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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

김치와 신비한 미생물의 세계

젖산균이 지배하는 신비한 미생물의 세계


△ 토종 젖산균 `류코노스톡 김치아이'의 게놈 지도 초안. 젖산과 에탄올, 덱스트란 등 김치아이의 고유 물질을 만들어내는 몇가지 효소들의 유전자 위치가 이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대 미생물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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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치는 과학이다!'

    부엌만이 아니라 생물실험실에서도 김치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김치 과학자도 부쩍 늘었다. 덕분에 김치는 이제 일본 `기무치'를 누르고 국제식품규격에도 채택된 국제식품이 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실험실의 김치 연구가 거듭되면서, 배추·무·오이 김치들의 작은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미생물들의 `작지만 큰 생태계'도 점차 밝혀지고 있다. 20여년째 김치를 연구해오며 지난해 토종 젖산균 `류코노스톡 김치아이'를 발견해 세계학계에서 새로운 종으로 인정받은 인하대 한홍의(61) 미생물학과 교수는 “일반세균과 젖산균, 효모로 이어지는 김치 생태계의 순환은 우리 생태계의 축소판”이라고 말했다.

    흔히 “김치 참 잘 익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치 과학자라면 매콤새콤하고 시원한 김치 맛을 보면 이렇게 말할 법하다. “젖산균들이 한창 물이 올랐군.” 하지만 젖산균이 물이 오르기 전까지 갓 담근 김치에선 배추·무나 고춧가루 등에 살던 일반세균들이 한때나마 왕성하게 번식한다. 소금에 절인 배추·무는 포도당 등 영양분을 주는 좋은 먹이터전인 것이다.

    “김치 초기에 일반세균은 최대 10배까지 급속히 증식하다가 다시 급속히 사멸해버립니다. 제 입에 맞는 먹잇감이 줄어드는 데다 자신이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가 포화상태에 이르러 더이상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되는 거죠.” 한 교수는 이즈음 산소를 싫어하는 `혐기성' 미생물인 젖산균이 활동을 개시한다고 설명했다. 젖산균은 시큼한 젖산을 만들며 배추·무를 서서히 김치로 무르익게 만든다. 젖산균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는데, “다른 미생물이 출현하면 수십종의 젖산균이 함께 `박테리오신'이라는 항생물질을 뿜어내어 이를 물리친다”고 한다.

    그러나 `젖산 왕조'도 크게 두 번의 부흥과 몰락을 겪는다. 김치 중기엔 주로 둥근 모양의 젖산균(구균)이, 김치 말기엔 막대 모양의 젖산균(간균)이 세력을 떨친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 박완수(46) 김치사업단장은 “처음엔 젖산과 에탄올 등 여러 유기물을 생산하는 젖산균이 지배하지만 나중엔 젖산만을 내는 젖산균이 우세종이 된다”며 “김치가 숙성할수록 시큼털털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둥근 균이 내뿜는 젖산 탓에 김치의 산도는 점점 높아지는데 산도가 0.5%(식초는 3%)가 되는 순간, 둥근 균은 쇠퇴하고 그때부터 막대 균이 기하급수로 증식한다”고 말했다. 젖산균의 세력교체인 셈이다. 산성에 강한 막대 균은 이때부터 김치의 운명을 다하는 `산성비 1%'의 시기까지 계속 세력을 확장한다.

     

    김치는 유독 젖산균이 똘똘 뭉쳐 생태계를 절대 지배하는 독특한 식품이다. 곰팡이, 세균, 효모 등이 섞여 사는 보통의 발효식품과 달리 김치는 젖산균의 지배체제가 워낙 공고하게 구축돼 있다는 것이다. “20여년 동안 갖가지 김치들을 다 헤집어봤는데 정말 다른 균은 찾기가 힘듭니다. 김치가 잘 익었을 땐 젖산균 밖에 없더라고요. 요구르트는 비교도 안되는 수십가지 젖산균들의 덩어리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김치죠.” `김치 박사' 한 교수의 말이다.

     

    그렇지만 젖산 왕국도 산성화가 진행되면서 최후를 맞이한다. 1㎖의 김치에 최대 10억~100억개까지 증식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막대 균조차 자신이 만든 젖산 환경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사멸하는 사이에, 젖산을 먹어치우는 효모가 마지막 `해결사'로 등장한다. `군내'가 나고 김칫국물에 허연 효모가 뜨기 시작하면 젖산왕조는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김치 미생물들이 실험실에서 조금씩 규명되면서 이제 김치는 `어머니 손맛'이 아니라 미생물에 의해 맛이 조절되는 새로운 김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김치 젖산균 가운데 맛을 좌우하는 우수한 젖산균들을 찾아낸다면, 이들을 `씨앗균'(스타터)으로 뿌려 같은 양념이라도 색다른 맛과 향을 내는 김치를 만들 수 있다. 박 단장은 “씨앗균을 찾아내는 일은 김치를 국제식품화하는 `차세대 김치'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치즈나 요구르트는 이런 씨앗균을 찾아내어 국제식품으로 성공시킨 대표 사례다.

     

    한 교수는 “김치는 수십종의 젖산균이 복합작용해 특유의 맛과 향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씨앗균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며 “토종 젖산균 1호인 `류코노스톡 김치아이'는 산성에 잘 견디는 능력이 뛰어난 씨앗균 후보감의 하나”라고 말했다. 김치아이는 자기 몸 주변에 자신보다 50여배나 큰 투명보호막(덱스트란)을 만들어, 강산성의 위장을 거쳐 대장까지 살아가는 능력을 지녀 지금까지 발견된 젖산균 가운데 `가장 똘똘한' 젖산균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엔 김치아이 젖산균의 유전자 연구를 위해 김치아이 게놈 초안까지 만들어졌다. 게놈 초안을 작성한 강사욱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는 “미생물은 지금까지 1%만이 알려져 있을 만큼 미지의 영역이 무궁무진한 생물자원”이라며 “토종 미생물들이 생물산업에서 치열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기사 출처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02/2001/09/0091000022001091219180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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