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 /황상익
린 마굴리스 外 지음, 황현숙 옮김 지호, 1999
우리 사회에서 요즘처럼 생명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고 논의가 활발한 적은 없었던 듯하다. 그리고 유전자재조합(변형, 조작) 식품에서부터 생명복제에 이르기까지 화제의 대상도 어느 때보다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생명과학의 발전이 ‘멋진 신세계’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다. 부족한 식량 문제도 해결되고, 난치병도 치료와 예방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또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생명과학의 발전을 예찬하기도 한다. 반면에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신세계란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지구 자체의 파멸과 종말을 뜻할 뿐이라고 여긴다.
서로 대립되는 양극단에 서 있는 이들 견해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타당한지를 선뜻 가리는 것은 지금으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점점 가속화되는 생명과학의 발달로 인간이 과거에는 상상도 못하던 힘(신에 버금가는 창조력이든 악마적 파괴력이든)을 가지게 된 점만은 분명한 사실일 터이다.
그러나 생명과학에 대한 것과는 달리, 막상 생명 자체에 대한 논의는 적어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생명의 현상적 속성뿐만 아니라 생명의 본질, 나아가 생명의 역사성과 철학적 의미를 묻는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우리말 판을 얻게 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작지 않은 의의를 지닌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은 생명과학, 더 넓게는 현대(과학기술)문명의 발전과 지향을 둘러싼 기왕의 논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주는 촉매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책은 제목처럼 생명의 본질을 묻고 있지만, 그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생명과학의 발전 앞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여 저자들이 인간을 생명의 중심이나 정점에 놓고 생명(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인간은 특별하지도 독립적이지도 않은, 그저 지구를 에워싸고 있는 생명의 연속체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 저자들 생각의 핵심이다. 소박하게 생각하면 인간의 생명은 태어나기 약 9개월 전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좀더 거시적인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지구의 탄생, 그리고 원시생물의 출현 시기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진화생물학자답게 전 地球史와 생명의 역사를 통해 그야말로 현란하게 수많은 사실을 들어가며 자신들의 주장을 확인해나간다. 그리고는 그에 걸맞게 “지표면의 국지적 현상인 생명은 사실상 그 우주환경 속에서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는 데에 이른다.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인간도 그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생명은 우주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근본주의 종교인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고 있듯이, 생명은 46억 년 전 초신성 폭발의 잔재물들이 응축하여 지구가 태어난 얼마 뒤에 별의 구성물질로부터 생겨났다. 저자들의 어법대로라면, 우주가 탄생하는 150억 년 전까지 거슬러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약 8천만 년 전에는 포유류의 뇌가 만들어졌고, 이제 온갖 감성적, 논리적 행동을 특성으로 하는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이 지구상에서 번성하고 있다. 그리고 생명은 인간을 통해 바야흐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우주에서 자신의 진정한 위치를 처음으로 자각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명의 역사 내내 제기된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찾기도 이러한 진화의 역사에서 가능해진 것일 터이다.
저자들은 우선 物活論과 機械論이라는 근대 초의 생명에 대한 관점을 비판적으로 언급한다. 즉,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생물체로 보는 물활론적 관점은 비과학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살아 있는 창조주의 설계에 따라 만들어졌음을 내포하는 기계론은 지극히 형이상학적이며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배격한다. 그리고 이어서 19세기 초 뵐러Friedrich Wo․․hler의 시험관 내 尿素 합성 이래 1953년 DNA 구조의 해명에 이르기까지 생명현상에 대한 여러 과학적 발견을 소개한다. 저자들은 이 가운데 DNA의 구조와 작용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으로 손꼽으며, 그보다 바로 앞선 시기의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의 물리화학적 인식을 생명의 본질에 접근하는 중요한 관점으로 다루고 있다.
생물학(생명과학)은 왓슨James D. Watson과 크릭Francis Crick 등이 세포핵 속에 들어 있는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히면서 종래의 대체로 박물학적이며 전체론적인 모습에서 미시적이며 (근대 초의 소박한 모습을 크게 뛰어넘은) 기계론적인 것으로 그 특성이 크게 변모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모의 자연스러운 귀결인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생명과학은 그 이래 학문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여 ‘생명의 창조’를 넘보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돌리’와 ‘진이’의 탄생도 왓슨과 크릭을 빼놓고서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20세기 생명과학 역사상 최대의 성과로 꼽는 DNA는, 이 책의 저자들이 주장하듯이, 생명체의 시공간적 연결성, 즉 역사성과 공동체성을 잘 드러내주는 근거이자 단서라고 생각한다. 저자들은 그것을 “생명은 공생으로 진화한 개체들의 진귀하고도 새로운 산물이다. 박테리아는 원생대 동안 움직이고접합하고, 유전자를 교환하면서 무수한 키메라를 만들어냈다. 이종세포 간의 합병을 통해 유성생식의 감수분열, 죽음, 복잡한 다세포성이 고안되었다. (그리하여) 생명은 세포나 생물체보다 더 큰 무엇”이라고 언술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점에서 진화의 역사는 경쟁과 배제의 과정이 아니라 공생과 협조의 과정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생명과학은 DNA 구조의 해명 이래 오히려 더욱더 脫歷史化의 과정을 밟고 있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 인간 중심의 편협한 사고와 행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많은 생명과학 연구자와 그 동조자들이 당당하게 내세우는 ‘인간의 복지를 위하여’라는 구호 속에서 우리는 ‘적자생존’ 진화론의 독선적 모습을 발견하게도 된다. 저자들은 기본적으로 생태론적, 전체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하여 저자들이 비판하고 있는 과거의 물활론을 받아들이거나 복권시키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왓슨과 크릭 이래 최근까지의 여러 생명과학적 성과들을 충분히 수용하면서도 생명의 역사성, 공동체성과 통일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들은 현대생물학자답게 DNA에서 출발하여 최근에 이르는 진화생물학과 생명과학의 수많은 발견과 업적들을 들어가며, 20세기 후반 생명과학의 ‘역설적’인 모습을 다시 뒤집으려는 노력을 펼친다. DNA의 의미에 대한 천착과 더불어 저자들은 생물계의 다양한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생명의 특성과 생명체들 사이의 ‘관계’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점이 다른 생태주의자들과의 뚜렷한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들은, 예를 들어, “생명은 지구 대기와 물, 그리고 태양에너지가 세포로 바뀐, 우주적으로 극히 국한된 현상이다. 생명은 시간을 통해 최초의 박테리아와 연결된, 그리고 공간적으로는 생물계의 모든 주민과 연결된, 팽창하고 있는 조직체”라며 은유적이고 생태주의적 뉘앙스를 띤 발언을 하고 있지만, 그러한 주장은 직설적(사실적)인 것이며 그 배경 역시 그들 스스로의 표현처럼 ‘과학적이면서 역사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요컨대 저자들은 40여 년 전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똑같은 질문을 던지며 생명의 본질을 추구했던 슈뢰딩거의 물리화학적 관점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들이 결론적으로 제시하는 대답은 생명체의 역사성과 공동체성인 것이다. 저자들은 극단적이고 일차원적인 생태론자들과는 달리 생명의 비밀을 밝히고 그것을 인간생활에 활용하려는 현대 생명과학의 역량과 유용성을 애써 무시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들은 생명과학자들이 생명체의 시공간적 연결성을 소홀히할 때 생명의 특성과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환기하며, 그들의 ‘선한’ 의도와는 달리 생명과학이 자칫 생태계에, 그리고 인간에게조차 유해한 것이 될지 모른다고 암시한다. 인간은 ‘지구를 에워싸고 있는 생명의 연속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을 현대 생명과학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보다 그 지지자나 옹호자들에게 더욱 권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주로 생명의 미시적 측면에 대해 천착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 이유로 건네고 싶다.
●황상익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린 마굴리스 外 지음, 황현숙 옮김 지호, 1999
우리 사회에서 요즘처럼 생명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고 논의가 활발한 적은 없었던 듯하다. 그리고 유전자재조합(변형, 조작) 식품에서부터 생명복제에 이르기까지 화제의 대상도 어느 때보다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생명과학의 발전이 ‘멋진 신세계’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다. 부족한 식량 문제도 해결되고, 난치병도 치료와 예방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또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생명과학의 발전을 예찬하기도 한다. 반면에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신세계란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지구 자체의 파멸과 종말을 뜻할 뿐이라고 여긴다.
서로 대립되는 양극단에 서 있는 이들 견해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타당한지를 선뜻 가리는 것은 지금으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점점 가속화되는 생명과학의 발달로 인간이 과거에는 상상도 못하던 힘(신에 버금가는 창조력이든 악마적 파괴력이든)을 가지게 된 점만은 분명한 사실일 터이다.
그러나 생명과학에 대한 것과는 달리, 막상 생명 자체에 대한 논의는 적어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생명의 현상적 속성뿐만 아니라 생명의 본질, 나아가 생명의 역사성과 철학적 의미를 묻는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우리말 판을 얻게 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작지 않은 의의를 지닌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은 생명과학, 더 넓게는 현대(과학기술)문명의 발전과 지향을 둘러싼 기왕의 논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주는 촉매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책은 제목처럼 생명의 본질을 묻고 있지만, 그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생명과학의 발전 앞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여 저자들이 인간을 생명의 중심이나 정점에 놓고 생명(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인간은 특별하지도 독립적이지도 않은, 그저 지구를 에워싸고 있는 생명의 연속체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 저자들 생각의 핵심이다. 소박하게 생각하면 인간의 생명은 태어나기 약 9개월 전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좀더 거시적인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지구의 탄생, 그리고 원시생물의 출현 시기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진화생물학자답게 전 地球史와 생명의 역사를 통해 그야말로 현란하게 수많은 사실을 들어가며 자신들의 주장을 확인해나간다. 그리고는 그에 걸맞게 “지표면의 국지적 현상인 생명은 사실상 그 우주환경 속에서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는 데에 이른다.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인간도 그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생명은 우주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근본주의 종교인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고 있듯이, 생명은 46억 년 전 초신성 폭발의 잔재물들이 응축하여 지구가 태어난 얼마 뒤에 별의 구성물질로부터 생겨났다. 저자들의 어법대로라면, 우주가 탄생하는 150억 년 전까지 거슬러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약 8천만 년 전에는 포유류의 뇌가 만들어졌고, 이제 온갖 감성적, 논리적 행동을 특성으로 하는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이 지구상에서 번성하고 있다. 그리고 생명은 인간을 통해 바야흐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우주에서 자신의 진정한 위치를 처음으로 자각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명의 역사 내내 제기된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찾기도 이러한 진화의 역사에서 가능해진 것일 터이다.
저자들은 우선 物活論과 機械論이라는 근대 초의 생명에 대한 관점을 비판적으로 언급한다. 즉,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생물체로 보는 물활론적 관점은 비과학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살아 있는 창조주의 설계에 따라 만들어졌음을 내포하는 기계론은 지극히 형이상학적이며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배격한다. 그리고 이어서 19세기 초 뵐러Friedrich Wo․․hler의 시험관 내 尿素 합성 이래 1953년 DNA 구조의 해명에 이르기까지 생명현상에 대한 여러 과학적 발견을 소개한다. 저자들은 이 가운데 DNA의 구조와 작용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으로 손꼽으며, 그보다 바로 앞선 시기의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의 물리화학적 인식을 생명의 본질에 접근하는 중요한 관점으로 다루고 있다.
생물학(생명과학)은 왓슨James D. Watson과 크릭Francis Crick 등이 세포핵 속에 들어 있는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히면서 종래의 대체로 박물학적이며 전체론적인 모습에서 미시적이며 (근대 초의 소박한 모습을 크게 뛰어넘은) 기계론적인 것으로 그 특성이 크게 변모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모의 자연스러운 귀결인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생명과학은 그 이래 학문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여 ‘생명의 창조’를 넘보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돌리’와 ‘진이’의 탄생도 왓슨과 크릭을 빼놓고서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20세기 생명과학 역사상 최대의 성과로 꼽는 DNA는, 이 책의 저자들이 주장하듯이, 생명체의 시공간적 연결성, 즉 역사성과 공동체성을 잘 드러내주는 근거이자 단서라고 생각한다. 저자들은 그것을 “생명은 공생으로 진화한 개체들의 진귀하고도 새로운 산물이다. 박테리아는 원생대 동안 움직이고접합하고, 유전자를 교환하면서 무수한 키메라를 만들어냈다. 이종세포 간의 합병을 통해 유성생식의 감수분열, 죽음, 복잡한 다세포성이 고안되었다. (그리하여) 생명은 세포나 생물체보다 더 큰 무엇”이라고 언술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점에서 진화의 역사는 경쟁과 배제의 과정이 아니라 공생과 협조의 과정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생명과학은 DNA 구조의 해명 이래 오히려 더욱더 脫歷史化의 과정을 밟고 있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 인간 중심의 편협한 사고와 행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많은 생명과학 연구자와 그 동조자들이 당당하게 내세우는 ‘인간의 복지를 위하여’라는 구호 속에서 우리는 ‘적자생존’ 진화론의 독선적 모습을 발견하게도 된다. 저자들은 기본적으로 생태론적, 전체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하여 저자들이 비판하고 있는 과거의 물활론을 받아들이거나 복권시키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왓슨과 크릭 이래 최근까지의 여러 생명과학적 성과들을 충분히 수용하면서도 생명의 역사성, 공동체성과 통일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들은 현대생물학자답게 DNA에서 출발하여 최근에 이르는 진화생물학과 생명과학의 수많은 발견과 업적들을 들어가며, 20세기 후반 생명과학의 ‘역설적’인 모습을 다시 뒤집으려는 노력을 펼친다. DNA의 의미에 대한 천착과 더불어 저자들은 생물계의 다양한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생명의 특성과 생명체들 사이의 ‘관계’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점이 다른 생태주의자들과의 뚜렷한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들은, 예를 들어, “생명은 지구 대기와 물, 그리고 태양에너지가 세포로 바뀐, 우주적으로 극히 국한된 현상이다. 생명은 시간을 통해 최초의 박테리아와 연결된, 그리고 공간적으로는 생물계의 모든 주민과 연결된, 팽창하고 있는 조직체”라며 은유적이고 생태주의적 뉘앙스를 띤 발언을 하고 있지만, 그러한 주장은 직설적(사실적)인 것이며 그 배경 역시 그들 스스로의 표현처럼 ‘과학적이면서 역사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요컨대 저자들은 40여 년 전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똑같은 질문을 던지며 생명의 본질을 추구했던 슈뢰딩거의 물리화학적 관점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들이 결론적으로 제시하는 대답은 생명체의 역사성과 공동체성인 것이다. 저자들은 극단적이고 일차원적인 생태론자들과는 달리 생명의 비밀을 밝히고 그것을 인간생활에 활용하려는 현대 생명과학의 역량과 유용성을 애써 무시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들은 생명과학자들이 생명체의 시공간적 연결성을 소홀히할 때 생명의 특성과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환기하며, 그들의 ‘선한’ 의도와는 달리 생명과학이 자칫 생태계에, 그리고 인간에게조차 유해한 것이 될지 모른다고 암시한다. 인간은 ‘지구를 에워싸고 있는 생명의 연속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을 현대 생명과학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보다 그 지지자나 옹호자들에게 더욱 권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주로 생명의 미시적 측면에 대해 천착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 이유로 건네고 싶다.
●황상익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출처 : 매혹된 영혼
글쓴이 : 존재의 마법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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