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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우리 역사 찾기

[스크랩] 한겨례의 참역사 2편 시간 걸리더라도 꼭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 주신제국(단군조선)이전의 역사


1.현생인류의 시원은 한반도 한민족                       

                                 

45억년전에 지구가 생겨 난후 인류가 출현한 시기는 대략 150만년전에 아프리카에서 활동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인류이기는 했으나 유인원에 가까웠고  현생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생인류는 언제 어디서 출현하였을까, 또한 현생인류로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발견된 화석을 조사해보니 약3~4만년전의 것으로 보이는 유럽의 크로마뇽인과 중원대륙의 상동인의 뇌의 용적이 오늘날 인간의 뇌의 용적과  크기가 비슷하여 이들을 현생인류의 조상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화석만 발견될 뿐, 구체적으로 어떠한 흔적을 남겼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반면에 고인돌(지석묘,Dolmen)은 당시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는 부장물이 무수히 묻혀있다. 따라서 현생인류의 조상 그것도 직접적인 조상은 인공적 시설물인 고인돌이 유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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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한도(한반도)의 고인돌과 선돌 분포도

 

그런데 고인돌이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지만 그 고인돌의 80%이상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 모여 있다. 이는 현생인류의 발상지가 한반도라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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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왼쪽-전남 나주시 다시면 회진토성 안 밭 가운데 있는 고인돌. 덮개돌이 마치 흙으로 빚은 것처럼 매끄럽다. 사진오른쪽-전남 순천시 송광면 고인돌 공원. 주암댐 건설 때 수몰지역 고인돌을 모아 만든 공원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고인돌이 분포 되어있는데 그 숫자가 약7만 여기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 1만여기는 북한지방에 3만여기는 남한에 분포 되어 있다. 그런데 일제침략기 신작로나 저수지 도로 철도 건설과정 및  해방 후 도시와 공단건설 농지정리 댐건설 등 국토개발을 하면서 무수한 고인돌이 파괴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수만 기가 유실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 할 때 한반도내에 세계고인돌의 80%이상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평안도 증산군 용덕리에서 발견된 10호 고인돌의 경우 돌 뚜껑 겉면에 80개의 구멍을 뚫어 별자리를 새겨 놓았다는 점이다. 또한 상원군 번동 2호 고인돌 뚜껑돌에도 역시 80개의 구멍을 내어 북두칠성의 국자 자국을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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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용덕리 별자리 고인돌 및 실측도


일반적으로 세계천문학계에서는 기원전 1200년경의 것으로 보이는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에서 발견된 토지경계비에 새겨진 별자리를 고대 천문학의 원형으로 보아왔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발견된 위 고인돌의 별자리는 이보다 1800년 이상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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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대구 동내동에 있는 고인돌. 표면에는 북두칠성(검은 선) 등의 별자리가 보인다.

또한 쥐나 운남성, 베트남, 태국, 인도의 아삼과 대칸고원 주변의 고인돌에는 한국의 것과 같은 고누판이 새겨져 있고, 제주도 오누이 장사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인도의 아삼지역 고인돌 부근에는 한국 것과 닮은 당간지주와 솟대가 발견된다고 한다. 인도 매갈라야주의 박물관장은 인도의 고인돌이 한반도의 고인돌 보다 나중 것이라는 것을 근거로 인도인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였다고 한다. 또한 북유럽과 중국대륙, 시베리아, 그리고 동북아시아 지역에 걸쳐있는 고인돌의 나이를 조사한 결과 동북아시아 지역의 것이 가장 오래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더구나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의 부장품에는 청동단추 등 청동제품이 발견되는가 하면 돌도끼 같은 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것은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거쳐 고인돌이 다양한 연령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약 6~7십만년 전에 이미 구석기인들이 있었고 이들이 빙하기에도 그대로 살아남아 신석기 청동기시대를 한반도에서 이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빙하기에 다른 지역과는 달리 한반도에는 기후가 춥지 않았고 따뜻하고 습기가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한반도에 출현하여 그대로 살아남은 것이다. 또한 즐믄토기의 전파방향을 보면 한반도 만주 몽골 시베리아 동유럽과 필란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점을 살펴 볼 때 한반도에서 고인돌문화를 발생시킨 민족이 한민족임을 알 수 있고,따라서 한반도에서 출연한 현생인류의 시조인 한민족은 점차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갔고 가는 곳 마다 고인돌 문화를 건설했다고 봐야한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고, 황인종인 한민족이 한반도에서 출발하여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 현생인류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흑인종의 경우 어떻게 황인종인 한민족과 같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강한 의문이 든다.


그러나 이는 오랜 세월동안 기후와 풍토의 영향을 받아 유전적 형질이 변형되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본다.1만년이상의 세월을 다른 환경에서 산다면 각자 그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원래 같은 종족이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외형적 모습은 변할 수밖에 없다.


첫째, 아프리카 흑인의 머리는 곱슬머리 그것도 비비꼬인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아프리카지역의 강렬한 태양열이 피부에 직접 닫는 것을 차단하기 위하여 머리카락이 그렇게 변하였다고 한다.


둘째, 피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피부가 하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열대지방에 가서 몇 년을 살다보면 원래의 피부보다 상당히 검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인도에 가서 몇 개월 살지도 않았는데 피부가 검어져서 처음 한국에 돌아 왔을 때 동남아인 취급을 받은 경험이 있다.


따라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만년이상을 그러한 곳에서 산다면 충분히 피부색깔이 변할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셋째, 한국에 우유가 처음 들어 왔을 때, 사람들은 비위가 상해서 제대로 마시질 못했다. 우리의 몸이 우유를 흡수할 만한 체질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하여 자주 마시게 되자 우유를 흡수할 수 있는 새로운 인자 즉, 한국인의 인체에 없었던 효소가 새롭게 생성되어 현재는 누구나 편하게 마시고 있다. 이는 환경에 따라서 우리의 인체가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반대로 아무리 흑인이라고 하더라도 인간 보편적 성질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더욱이 흑인종의 피나 황인종의 피나 똑같아서 서로 피를 주고받을 수 있다. 또한 이빨 색깔도 같고 정액의 색깔도 황인종이나 흑인종이나 똑같다. 즉 겉 거죽만 색깔이 틀리지 그 외는 똑같다는 것이다.


아울러 백인종의 경우도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보면, 현재 헝가리인의 경우 백인종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그 골격이나 내부적인 인자가 한민족으로 증명된 훈족(흉노, 스키타이)의 후손임이 드러났다. 참고로 훈족은 아틸라 시대에 로마제국을 호령했다. 최근에는 독일(게르만족)이 스스로 자기네들의 뿌리가 한반도 한민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독일인들이 전쟁 신으로 모시는 신의 이름이 ‘티우’라고 하는데 이것이 신시배달국 14대 천자인 자오지 ‘치우’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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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이탈리아의 크리프타 아프레시아 교회에는 훈족의 병사가 몸을 돌려 뒤따라오는 로마병사에게 활을 쏘는 그림이 있다(작은 그림) 이 그림은 만주 집안(集安)의 고구려 무용총에서 나온 고구려 무사의 수렵도와 닮아있다.(큰 그림)


따라서 현생인류의 발상지인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한반도에서 이곳의 주인인 한민족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각지의 기후와 풍토라는 환경의 영향을 받아 백인종으로도 변하고 흑인종으로도 변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편 고인돌 외에 우리나라 경남 창녕지방에서 지금으로부터 약8000년전의 소나무배가 발견된 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볍씨화석이 한반도에서 발견된 점주목할 만한 근거가 될 수 있겠다. 또한 2004.5.에는 전남 장흥 신북마을에서 2만2천년전의 마제석기가 발견되어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최고로 알려진 마제석기는 1만1천년전의 것으로 이란 이랔 팔레스타인등지에서 발견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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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전남 장흥에서 발견된 마제석기 간돌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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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경남 창녕군 부고면 비봉리 낙동강 변에서 발견된 8천년된 소나무배

결국 한반도에서 현생인류가 발생하여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 오늘날의 다양한 인종으로 변했다고 본다. 따라서 그 원형은 한민족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2.현생인류 최초의 문명국가 한국(환국)


1)문명의 의미와 발생조건

오늘날 문명이라는 말은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문명이란 인간이 원시생활을 뛰어넘어 인간의 생각을 통하여 인공물을 창조하여 의식주를 해결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하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생활경험을 통해 사물에 대한 지식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도구를 사용하여 노동을 하며 의사소통을 위해 언어와 문자를 사용할 때 문명이 발생한다. 즉 문명은 도구와 언어(문자) 그리고 인간의 생각이라는 3가지 요소가 갖추어졌을 때 발생한다.


2)수메르문명

인류 문명과 관련하여 초 고대 문명으로서 ‘아틀란티스’와 ‘뮤’ 그리고 ‘위글’ 문명 등이 거론되지만  구체적인 증거들이 확보되어 보편화 단계까지 오지 않은 상태이며 전설적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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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아틀란티스 유물로 추정되는 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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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뮤문명 상상도

그런데 한민족의 유력한 사서인 ‘삼성기전 하편’에서는 지금으로부터 9203년전 파내륜산 밑에 남북5만리 동서2만리의 강역과 12개 나라를 거느린 한국이 있었고 3301년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또한 이 지역은 천해의 동쪽 땅이며 천해는 지금 북해라고도 한다. 고인돌과 이 기록을 근거로 한민족은 한반도에서 발원하여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중원대륙을 아우르는 남북5만리 동서2만리의 한국문명을 건설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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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한단고기를 기초로 본 한국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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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한반도에서 발원한 한민족이 일으킨 한국문명

또한 통치자 명칭을 한인(환인)이라 하고 한인 7인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그 이름을 보면 다음과 같다.


1세 한인‘안파견’, 2세 한인‘혁서’, 3세 한인‘고시리’, 4세 한인‘주우양’, 5세 한인‘석제임’, 6세 한인‘구을리’, 7세 한인‘지위리’이다. 그런데 3301년동안 ‘어떻게 7명이 다스릴 수가 있는가’ 라는 강한 의문이 생긴다. 21세기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 경전의 성경 창세기에서도 나오는 바와 같이 아득한 옛날 인간이 수백년을 사는 것은 기본이었다. 900살 이상 사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님을 성경 창세기는 말한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신선’이 가장 적합한 비유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3301년 동안 7명이 다스렸다는 기록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 


그런데 한국이 거느린 12개 국가 중에서 ‘수미리’국이 나타나는데 이는 지금까지 밝혀진 인류문명 중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수메르’가 바로

‘수미리’라는 것이 민족. 재야사학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또한 움직일 수 없는 유력한 증거들이 속속들이 발견되고 있다.


첫째, 수메르문명이 동북아시아에서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유적이 이라크 북부 자그로스산맥에서 발견되었는데 자모르 유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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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948년 이랔 근처 자그로스 산에서 발견된 자모르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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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이랔 중앙상단 자모르 지역 표시

 

                  

이 자모르유적에서 곡식 알갱이와 돼지, 사슴, 개의 뼈와 사슴 뼈로 만들어진 돌낫이 나왔는데 탄소연대가 BC.6700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5000개가 넘는 곰, 염소, 돼지, 개의 점토조각과 작은 두상 조각상이 발견되었는데 두상의 형태는 가늘고 긴 얼굴에 얇은 입술과 뾰족한 턱, 높은 광대뼈와 째진 눈을 하고 있는데 편두를 한 동이족의 얼굴이다.


이렇게 자모르 유적에서 개의 뼈와 돼지를 키우고 흑요석의 세석기를 사용했다는 것은 약 3000년 앞선 시기의 동북아시아문화와 일치한다. 이는 한반도 백두산지역의 흑요석 문화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까지 개를 포함한 가축사육이 시작된 것을 신석기초기에 메소포타미아지역으로 보았는데 스웨덴의 왕립기술원에서 개의 조상을 분석한 결과 이는 동북아시아의 2종류 늑대에서 15000년 전에 유전형질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것은 15000년 전이고 이 개가 전 세계에 퍼진 것은 12000~ 8000년 사이다.


그런데 자모르 유적에서 개의 뼈가 발견되고 이스라엘의 나티피안유적(BC.10000년)에서도 개를 순장한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개를 순장하는 풍습은 동북아시아의 오환, 숙신, 견융에서 행해진 풍습이다.


이렇게 세계 역사학계가 수메르와 이집트문명의 갑작스런 출현을 최대의 수수께끼로 보고 있는데 개의 조상을 알아보면 그들이 동북아시아에서 이동한 종족이란 것을 알 수가 있다.


둘째, 언어의 유사성이다. 교착어란 명사에 토씨를 바꾸어서 주어나 목적어를 표현하는 언어다. 예를 들어 주어의 경우 교착어가 아닌 영어나 한어는 ‘나’를 표현할 때 그냥 I 나 我 로도 충분히 말이 된다. 그러나 교착어인 한국어는 ‘나’만 가지고는 주어가 안 된다.


나+는 이라고 해야 말이 된다. 목적어도 마찬가지다. 영어는 me 로서 충분하다. 그러나 한국어는 나+를 이라고 해야 말이 된다. 일본어도 마찬가지로 ‘아나따’(당신)만 가지고는 목적어가 될 수없다. ‘아나따’+‘오’라고 해야 ‘너를’이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문장구조도 교착어는 주어+목적어+동사 구조를 하고 있다.

또한 교착어는 ~다. ~까? ~로 ~가 등의 조사를 써서 언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교착어를 쓰는 종족은 동이계열의 종족으로서 한국 몽고 일본과 터키 그리고 헝가리와 쥐나국(촤이나)의 소수민족인 묘족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런데 수메르어에서도 한국어와 같은 교착어현상이 나타나고 발음과 뜻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몇 가지 실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슈메르발음[뜻]      한국어 발음[뜻]        슈메르발음[뜻]          한국어 발음[뜻]

아누(Annu)[신]    하느님 [하느님,上帝]     Bad 바드 [ 밭 ]        밭 (Bat) [밭, 田 ]

안 (An) [天]      하늘 (ha) [ 하늘, 天 ]   Na 나 [나 1인칭]         나 Na [ 나,我 ]

   기르(Gir)         길 (Gil) [路]         Ge 그 [3인칭 ]          그 Ge [ 3인칭 ]

라(Ra)[~에서 ]     로 (Ro) [ 조사 ]        I 이 [1 인칭 ]          이 [지시대명사]

아비Abi[아버지]    아비 (Bo) [아버지]      Uhma 움마[엄마]         엄마 Uhma [엄마]

니므 Nim[님 任 ]    님 (Nim) [ 님 任]      As아스:처음[1]         Asi아시[처음,시작]


위 ‘아시’의 경우는 우리의 고어로써 처음 한 빨래를 ‘아시빨래’라고 하는 기록이 고문헌(삼국사기)에 나온다. 충청도의 경우 필자의 어머니가‘아시로 먹는다’‘아시로 한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자주 듣는다.  그리고 아느(An)는 하느님을 뜻하고 최고의 신을 말하는데 우리말의 하늘님, 한울님과 같은 의미로 [아래아]를 기준으로 하면 모두 같은 소리가 난다.


또한 안(An)은 제정일치 사회에서는 우주의 최고신을 대신해서 땅을 다스리는 성인을 말한다. ‘대한민국’에서‘한’은 한자 한韓이 아니라 순 우리말 ‘한’인데, 이는 단=칸과 같은 것으로 큰, 지도자, 호태왕(황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현재 우리의 지명에서도 이러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충남‘대전’은 이씨조선이 한자지명으로 바꾸기 전에는‘한밭’이었고, 충남대천도‘한내’였다.


한자에서도 한(汗)과 간(干)은 같은 소리의 글자로 한국어에서는 칸으로 읽기도 하는데 징기스칸을 한자로는 성길사한(星吉沙汗)이라 했으며 신라왕을 거슬막한(汗)이라고 한다. 즉 한(汗)은 고대에는 안(An)으로 통했고 안과 한(칸,단)은 결국 같은 뜻임을 알 수 있다.


셋째, 수메르인들은 스스로 검은머리에 황금색피부를 한 사람들이라고 불렀고, 자모르 유적에서도 나왔듯이 얼굴 생김새가 가늘고 긴 얼굴에 얇은 입술과 뾰족한 턱, 높은 광대뼈와 째진 눈을 하고 있는 동이족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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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씨름하는 구리 향로(수메르)                그림-고구려 씨름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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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수메르인왕 구데아

이 수메르인들은 현재의 이란 이랔  파키스탄을 아우르는 지역에 동방으로부터 건너와서 문명을 건설하였는데 이미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사법제도 학교제도 최초의 창조설화 등 세계최초라고 하는 39개 사건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 지역에 정착을 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문명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문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문자는  페니키아->그리이스로 이어지며 알파벳의 원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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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수메르 쒜기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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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세계최초의 문자로 알려진 수메르의 점토판 설형(쒜기)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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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수메르 유적                          사진-수메르 수도시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남긴 점토판에는 한자까지 보인다는 점이다. 한자는 이미 한민족(동이족)의 발명품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쥐나족의 양심 있는 학자나 지식인들(임어당-생활의 발견 저자)은 이것이 사실임을 고백하였다. 더구나 한자의 원형이라는 갑골문자가 은허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갑골문자를 발명한 은나라가 사실은 동이족인 한민족이 세웠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더욱이 박씨집안에서 고려시대부터 가보로 전해 오던  갑골문자 천부경이 세상에 공개되었는데 은허의 갑골문자 외에 더 많은 갑골문자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동양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 이 수메르인들이 정착할 당시 이지역의 원주민들의 생활상은 원시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직조기술이 없어서 동물의 가죽을 옷을 입고 다녔고 사냥을 통해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이 지역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히브리인인데 Habiru로 불렸다. 이 말은 ‘산적’또는 ‘떠돌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들이 이렇게 원시생활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때 수메르인들은 이미 옷을 짜서 입었고 옷에 물까지 들여 입었다. 건축기술도 발달하여 2층 가옥까지 지을 정도였다고 한다.

                                                                      

넷째, 이외에도 수메르 왕을 ‘던건(단건)’이라고 불렀고 기원도 ‘던기(단기)’기로 하였다. 동이족의 발명품이라고 알려진 1년을 12달로 하는 태음력을 만들고, 다시 하루를 24시간으로 만들었다는  점, 한 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하는 60진법을 만들었다는 점, 인류 최초의 토기가 송화강(아무르)지역에서 1 만여년 전에 시작되었고 소위‘레반트’문화가 중동지역에 등장한 것이 약 6천년 전이라는 점, 수메르의 12궁도와 한민족의 12간지의 유사성, 그밖에 수메르와 한국은 묘장제도, 순장제도,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고 있는 점 등이다. 이러한 현상은 같은 뿌리가 아니고 서는 설명될 수 없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벽에는 거대한 봉황 한 쌍이 그려져 있다.


또한 수메르문명의 특징 중의 하나는 지구랏이다. 지구랏은 높이만 하더라도 수십미터나 되는 거대한 사각형모양의 신전이며 피라밋과 유사하다. 2003.3. 아메리카(미제)가 이랔을 침공하면서 이랔지역에 산재해 있던 수메르유적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는데, 이때 이랔에 남아 있는 지구랏에 총탄이 맞은 것을 방영해주기도 하였다. 이 지구랏은 제천의식을 하던 곳으로 알려졌고 우리의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모습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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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이랔 지구랏                 사진-초가잠빌 지구랏 BC 3천년경


이러한 수메르문명은 이후에 나타나는 이른바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에 영향을 주었음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4)수메르 문명과 기독교 및 이슬람교

현재 서양정신의 주된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헤브라이즘이 녹아 있는 기독교성경 첫 번째 경전인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 나온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약1900년 사람이다. 이 사람은 기독교(천주교 개신교)와 이슬람교의 실질적인 시조이다.


그 전에 노아도 나오지만 아브라함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직접적인 계보조상이라고 알려졌다. 즉, 기독교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서 낳은 적자 이삭의 후손이고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이 그의 하녀 하갈에게서 낳은 서자 이스마엘의 자손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Ur)에서 살다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인 현재의 이스라엘 지방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갈대아 우르는 수메르문명의 중심지인 이랔 지방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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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이랔의 남동부에 우르(UR)가 표시되었다.>          <지도-빨강색 부분-우르>

또한 성경에는 바벨탑사건이 나오는데 이 바벨탑도 사실은 지구랏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르남무(Urnammu)법전은 수메르인이 만든 것인데 인류최고의 법전이다. 이 법전의 명칭에도 우르(Ur)가 나온다. 기독교 성경에는 10계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모세가  나온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 이집트 왕립도서관 서고에서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유대역사를 집필하였는데 이것이 소위‘모세5

경’이고 구약성경의 초반부를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도 함무라비법전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 함무라비 법전은 수메르법 우르남무법전을 보완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 수메르인은 이미 고도의 농사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홍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홍수가 수메르인들에게는 엄청난 골치 거리였다. 그래서 수메르인들홍수이야기가 나오는 서사시‘길가메시(Gilgamesh)를 남겼다. 그런데 노아의 홍수사건은 이 길가메시와 완벽하리만큼 일치한다. 이와 같이 성경에 나오는 창조설화 홍수이야기의 원형이 이미 수메르의 점토판에 기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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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홍수설화가 기록된 길가메쉬 점토판                             그림-노아의 홍수 상상도

또한 위 자모르 유적에서 나타난 사람의 모양과 관련하여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네피림이라는 종족이 나오는데, 독사의 얼굴과 매서운 눈을 가진 외래의 주시자들이 기술과 천문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금지된 신의 문명'의 저자 앤드류 콜린스도 이 자모르인들이  마치 ‘아시아인 같은’ 이라고 표현하면서 그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네피림 주시자들 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따라서 서양정신의 모태인 기독교와 아랍회교문화의 이슬람교조차도  수메르 문명의 영향권 안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빛은 동방에서’ ‘문명의 빛은 오리엔트에서 비추기 시작했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양사에서도 최초의 서양문명인 기원전 1000년전에 발생한 그리이스(희랍 또는 헬레니즘)문화와 뒤를 이은 로마문화가 오리엔트 즉, 동방에서 왔다고 인정하는 것을 보면, 이들 두 문화도 수메르문명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서양문명은 그리스의 합리적 이성(헬레니즘)히브리의 감성적 신앙(헤브라이즘)이라는 두 물줄기로 이루어 졌고 이 문명은 한민족의 후예 수메르에서 나왔다.


한편 수메르인들은 인도에도 내려가 인더스 문명이전에  모헨조다로라는 도시국가를 건설하였는데  여기에서도 벽돌로 쌓은 신전을 만들었다. 이 수메르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남하하면서 기원전 2300년에 폭이 10m나 되는 도로를 건설했으며 상수도와 쓰레기 처리장은 물론 공동 목욕탕까지 갖춘 계획도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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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파키스탄 카라치에서 발굴된 도시국가 모헨조다로의 대중목욕탕

현재 교착어로 알려진 드라비다어(수메르어의변형)가 인도 여러 지방에서 사용되고 있고 드라비다어로 알려진 타밀어는 인도 남동부 타밀주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말과 같은 것이 무려 1천여 개나 달한다고 한다. 필자는 현지 여행중에 마치 전라도 사투리를 듣는 착각에 빠진 적이 있다. 또한, 인도의 고대어라고 하는 산스크리트어(범어)의 모태가 되고 동서언어의 뿌리인 ‘천축실담어’는 거의 1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현재 한반도 각 지방의 사투리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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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인도에 건설한 수메르인의 도시국가 왕비 샤바트의 전신상-대영박물관 소장>

실담어만 수십년 동안 연구해온 <셰죵ㅎ한림원>의 강상원 박사가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에서 펴낸 ‘산스크리트-영어’사전에 나오는 ‘천축 실담어’를 비교분석한 결과  우리의 각 지방 사투리와 ‘천축실담어’가 대부분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천축실담어’ 옥스퍼드사전에 나오는 예를 몇 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ari-langh(아리랑): ‘사랑하는 사람이 서둘러 이별한다’. Asia(아시아): 와서 쉬야, 쉬시오, 안식의땅. Um-jive(움집):엄마,음마(um-ma),음(陰um),자궁(子宮),태->영어로는 홈home.  geshi khieya(거시기):머리속에서 찾아 가지고 밝히겠다. manura,manusa,manavi: wife 인류의 조상, 지혜의 화신.  masi-kheya(머시기):계산해서 밝히겠다. gama(가마):나아가다.  iriya jjaja(이리여 짜짜-소를 몰때): 빨리 심(力)내라.  uli-ta(얼리다.어울리다):성교하다.음양의 조화.  Ehden(에덴.이전엔):하늘로부터 ‘얻은동산’.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재 한반도 전역에서 사용되고 있 사투리(표준말포함)가 알파벳으로 그대로 표기되어 있고 그 뜻도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대동소이 하다. 오히려 우리가 모르고 있던 뜻까지 나와 있을 정도다.


또한 한민족은 앞서 본바와 같이 수메르인이 인도에 이동하여 살았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인도무굴제국을 세운 몽고족이 주도권을 행사하며 살았다. 그리고  불교의 석가모니는 천축실담어와 한가지인 산스크리트어(범어)를 사용했는데 이 산스크리트어가 우리의 사투리에 속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래서인지 석가모니도 한국인이었다는 말이 나오고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석가모니의 초상이 가장 신빙성을 갖는다고 하는데 이를 보면 한국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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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난존자가 석가모니 생존시 그린초상-대영박물관 소장

그리고 현재 인도 구자랏 지방의 구자랏어도 우리 한글의 모태가 되어있는 가림토 글자에서 나왔다고 한다. 가림토 글자는 한단고기 단군세기 편에 기원전 2181년 경자2년에 이 글자를 창제하게 된 과정이 기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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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구자랏문자

"આજે નસીબ સારું છે!" બટન, આપને આપની શોધના પ્રથમ વેબ પાના પર લઇ જશે.

"આજે નસીબ સારું છે!" એટલે શોધવામાં ઓછો અને વાંચવાનો વધુ સમય.  

그림-1.가림토문자 2.한글 3.일본신대문자 4.인도 구자랏어


20세기 인도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시인 타골(Tagore)은 일찍이 영감에 휩 쌓여 한국을 열렬히 사모하였다. 그의 일생과 작품은 현재 인도 캘커타의 빅토리아여왕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는 필자가 1997년 인도를 여행하면서 그곳에 들러 확인한 바 있다.


타골이 얼마나 한국(Korea)를 그리워하였는지 그의 시 한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이 시에서 한국이 ‘홍익인간’사상과 ‘신선의 나라’ ‘지상낙원’과 같은 나라였음을 노래하고 있는 듯 하다.그의 시를 감상하면서 한국문명의 존재를 확인해 보자.


‘과거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한국(Korea)은 문명의 횃불을 높이 들었던 나라중의 하나였다.

그 찬란한 횃불이 다시 타오르기를 기대하노라.


마음속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이상은 높은 곳을 향하여, 지식은 자유를 구가하고,

아집의 담벽을 시원히 헐어버려,

세상에 분열이 사라진 곳,

언어가 진리의 샘에서 솟아나는 곳,


은근과 끈기로 노력하며,

성취를 위하여 뻗어가는 그곳에,

맑은 지성의 물결이 낡은 풍속에나,

황량한 사막으로 흘러도 윤택하게 꽃이 피고,

생각과 행동이 무한히 퍼져 열매를 맺는 곳,


우리들의 마음이 자유의 천국으로 인도되어,

내 마음속에 기리는 조국, Korea(Kuliya-구려,고려)여!

깨어 일어나, 태초문명의 찬란한 횃불을 높이 드소서!’


위 시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방문한 타골을 국내 동아일보에서 타골을 취재하면서 타골이 써준 것으로 알려졌는데 내용이 다소 차이가 나긴 하나 줄거리는 같다. 타골이 한국을 이처럼 위대하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는 타골이 힌두교 경전을 익히면서 거기에 등장하는 단군조선을 보게 되었고 인도인이 중앙아시아에서 내려오면서 당시 베다경전이 단사상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한국의 수메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인더스지역에 수메르 문명을 일으켜 이후 나타나는 이른바 세계4대 문명의 원조가 되었다. 수메르문명이 발견되기 전에 세계사학계에서는 ‘황하문명, 인더스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이집트문명’등 이른바 4대문명이 대세를 이루었다.


지나족(촤이나-중국)이 자기들의 문명이라고 우겨대는 황하문명도 사실은 그 이전에 하북성과 요녕성 내몽고지역 일대에서 발생한 홍산문명보다 1천년이상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동이족 즉 한민족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3)아메리카 인디언 인디오 문명

현생인류 최초의 한국문명의 흔적을 태평양건너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북아메리카와 멕시코의 원주민남미의 인디오들이 사실은 한국시대를 전후하여 한국에서 건너온 사람들로 밝혀지고 있다. 이들은 현지에 정착을 하면서 이주해 올 때 가져온 한국문명을 이식하였다. 이러한 증거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첫째, 피라밋이다. 피라밋은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이집트의 피라밋이다 그런데 중원대륙의 티벳, 서안, 내몽골자치주 한주(만주)등에서도 피라밋이 발견되었고 이집트 피라밋보다 규모면에서 월등히 큰 것도 있다. 그리고 조선반도에서도 발견되는 피라밋도 그 규모는 아주 작지만 원형은 중원대륙에서 발견되는 피라밋과 같다. 그리고 이 이들 피라밋의 특징은 사각뿔모양의 피라밋이 아니라 꼭대기가 평평한 방단형 피라밋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메리카와 멕시코 남미에서 발견되는 피라밋도 이런 방단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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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중원대륙의 피라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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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멕시코 피라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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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마야문명 피라밋- 멀리 큰 피라밋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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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한주(만주)에 있는 고구려피라밋-한주에는 1만여개의 피라밋 무덤군도 발견되었다.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피라밋 위 부분이 모두 평평한 방단형(계단형)이다. 이것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제단이라고 한다. 앞서 살펴본 수메르문명의 상징 지구랏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메리카지역의 피라밋은 한국에서 이주한 시기와 피라밋을 지은 왕들을 조사해 본 결과 중원대륙이나 고구려의 피라밋보다 시기적으로 늦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집트의 피라밋은 위가 평평한 방단형 계단형이 아닌 사각뿔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 최초의 피라밋은 사카라 피라미드인데 이것은 동방의 피라밋과 같이 위가 평평한 방단형 계단형 피라밋이다. 그리고 이 피라미드를 건설할 당시 이집트 파라오들은 동방에서 온 비 흑인 침략자라고 알려졌고 이들의 두상을 보면 동양인이다. 특히 두탕카멘은 영락없는 우리 한반도 아저씨다. 또한 이들이 남긴 제사용 그릇을 보면 일목삼신어一目三神魚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삼신일체하나님 사상(천부경과 삼태극)과 똑같은 것임을 알 수 있고 한국의 무속에서는 오래전부터 부적으로 사용하던 것임이 밝혀졌다. 현재도 모 기업에서는 기업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 건물을 짓고 난후나, 개업을 하였을 때, 출입구 안쪽 천정바로 밑에 실로 두른 북어같은 마른 물고기를 걸어 놓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있다.


둘째, 이른바 편두遍頭식 머리를 하는 제도가 한국과 마야문명이 같다는 것이다. 편두란 이마가 납작한 머리를 말한다. 한국의 경우는 앞서본 수메르의 자모르 유적의 인두상이 편두를 한 동이족의 모습이라는 것과 가야시대신라시대편두식 머리를 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마야인들도 역시 같은 편두식 머리를 한 것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 편두식 머리를 하게 된 이유도 양쪽 다 거의일치하고 있다. 편두식 머리를 한 것은 령적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셋째, 언어와 풍속 유물 문자 그리고 주요사건이다. 먼저 언어와 풍속을 보면 마야문명과 잉카문명(남미)의 언어와 풍속이 한민족 문화와 똑 같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네’를 ‘그네’로,‘꽃신’은 ‘꼬신’으로, ‘낫’은 ‘낫’으로, 나무를 묶은 것을 다바리(경상도 사투리)라고 하는데 이것도 똑같다. 새를 쫓을 때 새끼(사내끼-충청도 사투리)를 꼬아 만들어 <휘이~ 휘이~>돌려서 새를 쫓는 소리도 한민족과  똑같다. 이외에 도자기, 꼬막단지, 맷돌, 팽이, 물레, 베틀, 물 두레박, 윳놀이, 뜨개질, 베틀로 옷감을 짜서 입는 것, 물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것, 등에서 일치한다. 참고로 이러한 현상은 인도와 쥐나사이의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소수민족에서도 나타난다.


에콰돌의 경우 한국방송이 ‘걸어서 세계속으로’라는 세계풍물여행을 방영하는 것을 보았는데, ‘키토’라는 지역을 소개하면서 인디오들의 생활모습을 비쳐 주었다. 이들의 생활은 가난하였다. 대부분 뜨개질과 바느질 베틀로 옷감을 짜서 시장에 네다 팔아 살아가고 있었다. 아기를 퍼대기로 둘러서 업고 다니는 것은 역낙없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유물과 문자다. 멕시코 올멕 유적지에서 옥으로 만든 홀(笏)에 새겨진 상형문자가 갑골문인데 해독 결과 신시배달국 14대 한웅천황 치우(蚩尤)와 소호(少昊)등 한민족(동이족東夷族)의 이름으로 밝혀졌다. 또한 아메리카 캘리포니아에서 3000년경으로 보이는 인디언의 돌 닻이 발견되었는데 재질이 아메리카 대륙에는 없는 것으로써 동아시아에서만 출토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쥐나의 <용봉문화원류> 책에는 중앙아메리카 최초의 문명인 올멕문화는 은(殷)왕조가 주나라에게 망해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은왕조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한다. 은왕조는 은조선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편 다음 두 가지 사건을 통해서도 마야문명이 한국에서 나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 전문위원이자 고건축 전문목수인 신영훈申榮勳씨가 1968멕시코 올림픽 때 멕시코에 가서 주변 유적을 방문할 기회가 생겨 돌아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고대의 대규모건축물들(계단식)이 위가 평평한 방단方壇으로 치켜 쌓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이 방단에는 신전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현지 원주민들의 엉덩이에는 푸른점(청반점 몽고반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영훈씨가 현지에 지은 한국정 준공식을 할 때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곳사람들이 찾아와서 신영훈씨가 입은 한복의 대님을 쓰다듬으며 옛날에 자신들도 이런 옷을 입었다고 했단다. 그리고 현지 동포들이 말하기를, 높은 곳에 사는 고산족은 우리와 거의 같은 풍속을 지녔다고 했다고 한다. 


또한 1910년, 청나라의 외교관 구양경이 멕시코에서 멕시코 혁명 때 죽은 화교에 대한 배상문제를 협의하는데 멕시코 원주민인 인디오의 지도자가 찾아와 만나기를 요청하여 만났는데 자신들은 원래 동이족(은복포족=은나라사람)으로써 약 3천년 전에 이곳으로 왔다고 하며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실사로써 정식외교문서인 대만외교부 자료보관처에 보관되어있다고 한다. 참고로 청나라는 한민족 구려(고구려)의 후손 려진족이 세운나라다. 인디오의 지도자가 이것을 알고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전에도 쥐나족의 관리가 멕시코에 갔을 때는 찾아오지 않다가 같은 한민족인 청나라 관리가 오자 찾아온 것이다.


남미의 경우 잉카문명에는 솟대가 보이고 인디오들이 아이들을 퍼대기로 둘러서 업고 다닌다. 북미의 경우 아메리카(미제)의 전차 잡는 최신형 공격무기인 헬기이름이‘아파치’인데 이것도 북미 인디언의 말인‘아파치’에서 따온 것인데 우리 북한 사투리‘아바이’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위‘나이아가라’폭포도 원래 이름이 ‘네가람’이라고 한다. 이것은 순 우리말이다. 즉 네개의 물줄기 또는 냇물이라는 뜻이다. 뤄시아 합바롭스크 지방을 상징하는 문양이 청색과 홍색을 바탕으로 하는 곰과 호랑이로 되어 있는데 이는 단군조선시대에 이 지역이 단군조선의 강역이었음을 증명한다고 본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보면 아메리카의 옛 지명이 남아있는 곳도 그 어원을 따라가면 한민족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메리카 대륙에 세워진 문명도 한국문명의 후손들이 이주해가서 건설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5)기타 한국문명의 증거들

현재 인도와 중국사이의 히말라야 고산족,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대, 파키스탄의 고산족, 중원대륙의 소수민족, 티벳족, 그리고 시베리아의 부리야트 공화국을 중심으로 하는 소수민족, 알래스카 옆의 캄차카 지역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보면 우리의 풍습과 문화와 거의 일치한다. 그 예를 들자면 끝도 없이 많으나 몇 개의 예를 들어보면, 첫째 무당문화가 생활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성황당과 한가지인 돌무더기가 있고 형형색색의 천과 끈이 나무나 기둥에 매달려 있다. 둘째, 짐승을 잡아 제단에 올려놓고 제천의식(고사지내기)을 한다는 것이다. 셋째, 맷돌, 절구통, 뜨개질이 있고, 베틀로 형형색색의 옷을 짜서 입고, 아기를 업고 다니고, 춤과 노래 음악을 즐기는 풍류문화가 고도로 발달해 있다. 넷째, 명절날이나 제천의식을 마치고 나서는 집집마다 방문하여 액운을 쫓는 행사를 한다. 그리고 이때 집에서는 보답을 하는데 보통 곡물을 내놓는다. 이는 우리가 대보름날을 맞이하여 풍물패가 요란스럽게 풍장소리를 내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액운을 쫓아주고 집에서는 쌀을 내 주는 행위와 같다. 필자는 고향이 충청남도 보령 웅천인데 이러한 행사가 해마다 대보름날에 있었음을 기억한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수메르문명과 아메리카 인디언 인디오가 세운 마야, 잉카문명이 모두 한국문명 이었음을 알 수 있고 약 1만년전에 거대한 한국문명이 발생하여 오늘날 전 세계 인류의 모든 종교를 포함한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의 토대가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한민족이 전 세계국가에 대하여 어버이의 나라요, 종가집의 위치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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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관악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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