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강촌의 추억 (3)

릴리즈미 2005. 3. 25. 10:29
 

신은 여성에 대해 ‘출산의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 이렇듯 사내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황홀경과 희열의 극치를 선사한 것인가 보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는 없겠으나, 모든 여성이 다 ‘멀티 올가즘’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니, 이 긴 머리 여인은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나

해야 할까.


아니면 남성들의 무지(無知)와 무능으로 모든 여인의 내면에 잠재된

‘보물 멀티’를 사장시켜 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되 모두 스스로 한번쯤 되돌아 보는것도 좋으련만...


‘멀티’를 경험하지 못한 여인들은 이렇게 외쳐대햐 한다.


“오! 경외하는 신이시여 ‘멀티 올가즘’을 주시려거든 모든 여인들에게도 골고루

나누어 주시옵소서”


하여간 남녀의 교접은 너무나 자연스런 현상이며, 에덴동산에서부터 출발한

아름다운 행위로 보아야겠다.  너무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상할 것도, 추할 것도

없어야 한다.


난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현실이 눈앞에 펼쳐져도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감상적, 본능적,동물적 충동으로 밀어 붙일 것 인가, 아니면 고결한 척 위선으로

위기를 넘겨야 옳단 말인가.


이미 마음속으로 ‘이 여인을 취했다’ 생각하고 잠들면 그만인데, 수도승이라면

몰라도, 난 속물중의 속물이 아니더냐.

이런 분위기라면 어떻게 그냥 넘길 수 있단 말인가.


500여년전 , 당시 생불(生佛)로 추앙받던 지족선사(知足禪師)는, 황진이가

속살이 드러나도록 비에 젖은 모시적삼으로 신기(神技)의 춤을 추며 유혹하는

바람에 30년 면벽참선의 수도정진(修道精進)을 포기하고 파계에 이르게 되었다니, 


선사는 황진이를 알고 난 뒤부터, 미친듯이 애타게 황진이를 찾아 헤메이다

객사 한것으로 역사는 전하고 있는데,

시신하나 거두는 이 없어 지금도 그의 무덤은 찾을 길이 없다해도, 남자로서

동정이 가는 구석은 있다.


반면, 황진이가 추었다던 그 때의 춤은 ‘승무(僧舞)’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까지

전해져 내려 오고, 여러 문화행사에서도 감초처럼 등장한다 하니, 

그 뿐인가,  황진이의 일대기를 오페라로 만들어 공연도 여러번 열었다고 하니,

참으로 그의 뛰어난 예기와 미모는 어지간한 허물도 덮어 주고 마는가 보다,

이 얼마나 공평치 못한 처사인가.


어디까지가 윤리이고 상식인가, 도덕의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만든 것인가.

난, 그저 멍청한 생각으로 기나긴 밤을 지새우고 있어야 했다.


새벽이 밝아오자 나의 대추방망이는 바람빠진 풍선처럼 축 느러져 있었다.

거울을 안 봐도 내 눈은 밤새 시달린 터라 움푹 패여 있을 것이 뻔했다.

배도 몹시 고팠고 어지러움도 느껴졌다.

배설을 억압하면 어떠한 결과가 오는지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날이 밝자 우리는 제각기 일어나 세면장에서 대면했다.

어제 밤엔 아무일 도 없었다는 듯,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칫솔을 들고 나와 표정관리 하느라 애를 쓰는 듯 했다.


난 다만 이 여인을 향해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휴- 내 아랫배가 왜 이렇게 아프지?”


그녀는 이렇게 화답했다.

“여자도 아프긴 만찬가지 예요” 하며 빙긋이 웃었다.    -끝-  글 쓴이 :서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