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 처녀들은 갈치 뱃진데기(뱃살)를 못 잊어 육지로 시집을 못 간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입안에서 호르르 부서질 뽀얀 갈치살이 떠올라 마음이 급해진다. 게다가 갈치가 살이 가장 통통하게 올라 맛이 무르익는 시기는 늦가을이라지 않던가. 여수항에 전화를 걸어 뱃시간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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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문도는 먼 섬이다. 여수항을 출발해 바다를 쾌속정으로 달려도 두 시간 반이 후딱 지나갔다. 옛날에는 열두 시간도 걸렸단다. 파도가 높은 날 허억허억 멀미에 시달리며 거문도로 시집을 왔던 처녀들은 그 기억이 하도 고약해, 일 년 만 살다 그만 떠나고 싶었던 이들도 몇 년을 더 버텼다 했다.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 쯤, 다도해의 최남단 섬이니 멀긴 멀다. 거문도로 향하는 ‘오가고 호’에는 온통 낚시꾼들이다. 농어, 볼락, 참돔 등 강태공의 마음을 홀릴 만한 녀석들이 은빛 바다 안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을 테니 그들의 얼굴이 상기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거문도는 또 슬픈 섬이다. 여수시 삼산면에 아우러지는 거문도는 동도와 서도 그리고 고도라는 세 섬으로 이루어졌다. 생긴 본새가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기라도 한 듯 꼭 옴폭한 항만이다. 그러다보니 탐내는 이들이 예부터 많았다. 일본 해적들을 겨우 내몰고 나니 러시아와 급박하게 대립을 하던 영국군이 덜컥 섬을 무단으로 점거했다. 그래서 거문도는 한때 영국 군함의 선장 이름을 따 ‘포트 해밀턴’이라 불리기도 했다. 거문도에는 영국기가 휘날렸고, 그들은 섬 주위에 수뢰를 묻고 전기를 놓았다. 무능한 조정은 아무 조치도 하지 못했다. 또 얼마 안 가 한일병합이 있었다.  오후 서너 시가 되어 나갔던 갈치배는 다음날 아침 여덟 시 반쯤이 되면 하나둘 씩 항구로 돌아온다. 수협 공판장이 슬슬 붐비기 시작한다. 18년째 입찰을 맡고 있는 박일룡 수협 유통사업과장님, 중매인들, 얼음을 나르는 인부들과 하역을 돕는 수협의 직원들까지 몸이 날래지고 갈치를 사러 나온 관광객들도 소란스럽다. “갈치는 길이가 중요한 게 아니지. 일지 이지 삼지… 이렇게 몸통 넓이를 재는 것이여.” 아하. 그러니까 손가락 폭으로 몇 개인지, 그거란다. 갈치회는 조금 잘아도 되고 구이나 조림으로 먹으려면 삼지 정도가 좋단다. 사지에서 오지 정도라면 귀한 손님에게 선물하는 정도랄까. 배들은 더 잦게 항구로 들어왔고 은빛으로 윤이 반들반들 나는 갈치 상자들이 계속 쌓여 갔다. 손끝으로 더듬으면 반짝이가 묻어날 것만 같다. 실제로 갈치의 은빛 비늘은 모조진주나 립스틱의 광택을 내는 재료로 쓰인단다. 그래서 거문도 갈치는 그냥 갈치가 아니다. ‘은갈치’다. 은빛 비늘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그물을 절대 쓰지 않고 낚시로만 잡는다. 갈치는 예민한 녀석이라 물 밖을 나오면 1분도 안 되어 죽기 마련인데도 어부들은 낚아올리자마자 목을 꺾어 버린다. 은빛 비늘을 최대한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물을 써서 잡기 때문에 색이 어두운 먹갈치보다 가격이 훨씬 비싸다. 또 거문도 은갈치는 제주 갈치보다도 살짝 비싸다. 살이 더 통통하기 때문이란다. |
갈치모양이 칼같이 생겼다 하여 예로부터 ‘칼치, 도어(刀漁)’라고 불렸던 갈치는 5월부터 12월까지 연중 많이 잡히지만 쌀쌀한 가을에 먹어야 제맛이다. 흔히 ‘가을’하면 전어를 떠올리지만 입맛 돌기 시작하는 가을 식탁에서 갈치는 빼놓을 수 없는 생선이다. 2~3월에는 제주도 서쪽 바다에서, 6월~11월에는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많이 잡히는데 가을에 잡히는 갈치가 씨알이 굵고 살이 올라 맛이 좋다.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은 갈치를 두고 ‘모양은 긴 칼과 같고 큰 놈은 8~9자이다. 이빨은 단단하고 빽빽하다. 맛이 달고 물리면 독이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살이 연하고 비린 맛이 적은 갈치는 영양소가 풍부한 생선으로, 주 영양 성분은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 각종 무기질, 비타민, 칼슘 등이다. 다량 함유된 칼슘은 성장기 어린이에게 도움을 주고, 등 지느러미가 달린 쪽을 중심으로 10%나 함유된 불포화지방산은 고혈압과 동맥경화, 심근경색 등 성인병 예방에 효과적이다. 갈치는 낚시로 잡느냐, 그물로 잡느냐에 따라 은갈치와 먹갈치로 나뉘는데, 낚시로 잡은 갈치를 ‘은갈치’라고 한다. 거문도에서는 오징어를 잡을 때처럼 한밤에 등을 밝히고 여러 개의 바늘이 달린 낚싯줄로 갈치를 낚는데, 그물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갈치의 몸에 상처가 나면 은빛 광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신선한 갈치를 고르기 위해서는 몸을 덮고 있는 은빛 비늘의 윤기가 반들반들하면서 반짝임이 살아 있는 것으로 선택해야 한다. 또한 살이 단단하고 배가 무르지 않은 것일수록 신선하다. 갈치는 요리 방법이 다양해 싱싱한 것은 회로 먹고 그 외에도 구이나 조림, 국, 찌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을 수 있다. | |
간국(때와 땀이 섞인 것)이 밴 등판을 가진 뱃사람들이 갈치와 삼치, 한치를 내려놓고 사라지면 중매인들이 오밀조밀 모여들고 입찰이 시작된다. 10시가 한참 넘은 시각이었다. 나도 5킬로그램 한 상자를 사서 집으로 보냈다. 7만 원이었다. 얼음을 채워 택배로 보내면 어디든 다음날이면 도착한다. “열여섯 마리나 들어 있네. 잘 먹을게.”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손질한 갈치를 한 도막씩 포장해 또 나의 냉동실을 채워 줄 것이다. 갈치회는 도시에서는 맛보기 여간 힘들지 않다. 낚자마자 얼음을 채워 항공편으로 가져오는 도시의 식당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흔하지는 않은 편. 그래서 거문도 관광객들이 가장 환호하는 것이 바로 갈치회다. 늘푸른식당 사장님은 비늘을 수세미로 박박 닦아내고 뼈 속의 힘줄도 조심스럽게 걷어 냈다. “이건 날로 먹으면 바로 아다리(배탈) 나요.” 물론 구이나 조림, 국을 끓일 때엔 상관없다. 잘게 썬 깻잎과 양파를 접시에 깐 후 갈치살을 도톰하게 썰어 올리고 다진 마늘과 고추, 통깨를 송송 뿌려 주면 갈치회 완성.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찍어 먹어도 좋지만 접시에 초고추장을 듬뿍 얹어 무침회로 먹으면 더욱 고소하다. 구이용 갈치는 횟감보다는 약간 통통한 녀석을 고르는 것이 좋다. 기름을 두르지 않은 프라이팬에 구워도 좋지만 석쇠를 이용하면 갈치의 은빛이 고스란히 산다. 잔가시를 발라내느라 오물거렸더니 입술에 기름이 반들반들하다. 애호박과 고추를 듬뿍 썰어 넣은 갈치조림 역시 씹을 것도 없이 베어 무는 순간부터 보들하게 녹아내린다. 냉동 갈치나 먹어 보았음직한 나, 갈치에 이제껏 속은 느낌마저 든다. |

 “선생님. 저 내일 거문도엘 가요.” 나는 출발하기 전날 한창훈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거문도에서 태어나 지금, 거문도에서 바다를 이야기하는 소설가다. “그러니까 우리가 도착하면 항각구 국을 꼭 끓여주셔야 해요.” 거문도에 온다면 반드시 먹어 보아야 할 것이 바로 ‘항각구 국’이다. 항각구란 엉겅퀴의 이곳 말. 쌉쌀한 엉겅퀴와 갈치를 넣고 끓인 이 갈치국은 오직 거문도에만 있다. 대답이 쉽게 돌아오지는 않는다. “요즘은 산을 다 돌아도 엉겅퀴 구하기가 쉽지 않은디…. 한번 찾아는 보겠다만 너무 기대는 말거라.” 그래도 선생님은 엉겅퀴를 구해 두셨다. 건너 섬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꽁꽁 숨겨두었던 것을 찾아냈단다. 우리는 와와, 기쁘게 소리를 지르며 선생님 댁으로 몰려갔다. 그곳에서 한창훈 선생님은 푹푹 삶아 쓴 물을 뺀 엉겅퀴를 된장에 버무리고, 토막 낸 갈치와 젓국을 넣어 항각구 국을 끓여 주었다. 후루룩 숟가락질 몇 번에 속이 뭉근하게 풀어진다. 갈치가 원체 해장에 좋은 성분이 많단다. 나는 몇 번이나 국을 다시 푸러 부엌엘 들락거렸다. |

 거문도 여행은 일박이일로는 살짝 부족하다. 배로 두어 시간 남짓 걸리는 돌섬 백도에도 꼭 가 보아야 하고 가족 단위 여행을 떠난 것이라면 근처 가까운 가두리로 낚시도 해 볼 만하기 때문이다. 나도 몇 시간 낚싯대를 붙들고 있었더니 고등어며 전갱이 등이 쉼 없이 올라와 이거, 거문도 주민들 먹을 물고기 내가 다 잡아 버리는 것 아닌가 걱정할 정도였다. 돔도, 쥐치도 곧잘 올라온다. 횟감 뜰 준비만 살짝 해 간다면 아이들에게는 더없는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또 거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녹산 등대에도 가 보아야 하고, 그 산책길 끝에는 민들레와 쑥을 넣어 빚은 막걸리집이 있으니 그곳도 들러 봐야 하지 않겠는가. 갓김치와 파전이 넉넉하게 나오지만 안주값은 따로 받지 않는다. 그저 막걸리 한 통에 5,000원이다. 아차. 손바닥만 한 자연산 홍합도 절대 빼먹지 말 것. 푸른 빛 나는 큼직한 껍질을 떼어 내면 홍합 살이 그렇게 쫄깃거릴 수가 없다. 그러니 최소 이박삼일이다. 거문도의 밤은 고요하다. 잎새주 몇 잔에 뺨이 달아올랐다. 나지막한 섬집들에 불이 하나둘씩 켜졌다. 보이지 않는 먼 바다에서 어느 어부는 은갈치를 낚아 올릴 테고, 가두리를 저 혼자 지키는 강아지는 웅크리고 앉아 검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겠지. 집 안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엉겅퀴 내음에 밤 깊어 가는 것을 자꾸 잊었다.  | |